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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OG recyde 2017.11.30 05:39

나는 네가 시냇물을 보면서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냇물이 흐르다가 넘쳐도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목련 나무 앞에서 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흰 목련 꽃잎들이 우르르 떨어져도 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밤 고양이를 만나도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밤 고양이가 네 발목을 물어도 그냥 그대로 서 있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꿈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밖의 봄볕 때문에 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에서 영롱한 바닷속을 헤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인공 딸기 향이 가득 든 고무지우개라면 좋겠다. 

인공 딸기 향을 넣은 딱딱한 고무로 만든 그런 치마만 366일 입었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오래도록 우울하면 좋겠다. 

아무도 치료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좋겠다. 

이 세상에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 대신 너를 닮은 시냇물, 우르르 떨어지는 큰 꽃잎들, 

달빛 아래 늘어진 길고 긴 밤 고양이의 그림자, 꿈속의 바다. 

그리고 고무 지우개. 그런 것만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이 세상에서 네가 없을 때에도 

나는 끝까지 살아남아 

네 모든 것에 어찌할 수 없도록 

얽메인 불행이라면 좋겠다.


_박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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