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산한 바람이 여문 옷깃 사이로 스며든다, 이제 겨울이구나 깨닫는다. 달력을 보니 곧 십이월이다. 힘든 몸을 이끌고 잠시 들어갔던 스타벅스에는 이른 캐럴이 재생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물은 평화로워 보인다. 물론 그 안에는 온갖 인과관계들이 숨어있겠지만... 바쁜 일정 속에서 잠시나마 한숨 돌리고 나니 애써 억눌러오던 안 좋은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멘탈이 강한 사람인지 약한 사람인지 그런 걸 판별할 수 있는 시험이 없어 객관적으로 얘기할 순 없겠지만 주관적으로는 약한 쪽에 가깝지 않나 싶다. 고요한 호숫가에 던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파동을 일으키듯이,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을 쉽게 내버려 두거나 체념하지 못한 채 내 목을 옥죄이고 있었다.

  2. 새벽 여섯 시가 되고 나서야, 분명 열두 시에 뉜 몸이 한숨도 잠을 못 이룬 채 여러 생각에 얽혀 오후에 잡힌 일정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결국은 다시 술을 찾는다. 조금은 술에 의지해야 조금이라도 잠을 청할 수 있으니까. 해야 할 일도 많고, 해결해야 할 일도 많고... 책임을 져야 할 상황들이 나이를 먹으며 늘어난다. 요즘은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분명 그때도 그때 나름대로 힘들었던 것들이 있었는데, 수십 년이 지나고 나니 어떤 걱정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지금의 나보다는 행복했을까?

  3. 작고 큰 불행들 속에서 사소한 행복으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서른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나의 위치란 그저 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어디서고 누구에게도 을로서 밖에 살 수 없는, 그저 허무하고 무력한... 공허하고 나약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