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밤은 대부분 잠이 차지한 공간이 적긴 하지만, 특히나 일찍 자려고 마음먹은 날은 정신이 더 맑아지는 편이다. 오늘도 역시나 그런 날이었다. 짙은 어둠이 걷히고 푸른 새벽 공기가 살짝 열어둔 창문틀 사이로 스며들어온다. 늘 이 시간을 보내고 잠이 든다. 오늘은 낮에 일이 있어 여덟 시에 알람을 맞췄는데, 억지로 자려 하다 잠이 오질 않아, 몇 시인지 확인하려 무심코 집어 든 핸드폰에서 본 숫자는 '기상까지 4시간 44분 남았습니다.'라는 안내 메시지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자야지- 라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도무지 잠이 안 와 노트북을 열자마자 본 시간 또한 '(토) 오전 4:44' 왠지, 오늘 촬영은 즐겁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미신을 딱히 믿는 성격은 아니지만 인간이란 게 보통 연속된 우연에 의미를 매기듯이 나 또한 숫자라는 허상에 쓸데없는 의미 부여를 하고 만다. 마치 습관처럼. 사실 그런 것 중 대부분은 잊히는 게 보통이다. 이 순간에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되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오늘 나의 하루는 어떤 하루가 될까. 과연 내가 생각했던 대로 불길한 하루로 마무리될지- 아니면 그저 별 볼 일 없는 지루한 하루의 연장선상일지, 미래의 나는 또 푸른 새벽을 맞이하고 잠이 들지.